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사이 사이,
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
어리고
지워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볼 거야
떨리는 두 손을 얹을 거야.
거기,
당신의 뺨에,
얼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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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는 사람들을 만나며 수많은 얘기를 했고 들었어.

근데 좀 힘들더라 집에 오는길이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감정 같은건데

억지로 자리를 해야한다는 기분이 자꾸 날 감싸고 들더라고

이젠 진짜 혼자가 익숙해진다고 해야하나

누군가와 자리를 하고 가면을 써야하는게 좀 힘이 들었었어

아무튼 뭐 그렇더라고

 

그러다가 집에오는길 새벽녘을 걷는데 날씨가 좀 풀렸더라

마냥 덥던 여름날이 아니라 이제 하늘도 좀 높게 느껴지는 그런 가을과 비슷한 날씨가 됐더라고

걷는데 마냥 좋아서 집에다 짐을 풀고 다시 나와서 좀 걸었어.

한시간 쯤 걷다 들어왔나

그런 꽁기꽁기한? 기분으로 산책을 마치고 들어와 누웠는데

문득 시가 읽고 싶어져서 이런 저런 글들을 찾아보다 위의 한강 서시가 눈에 띄는거야

 

운명이란 거역할 수 없는 것을

따듯하게 안아주는 한강의 이 시는 뭐랄까

나의 운명에게 내가 다 위로 받는 기분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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